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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행위성의 예술] 독후감 | C. 티 응우옌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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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행위성의 예술] 독후감 | C. 티 응우옌

SuHong 2024. 6. 15. 2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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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해 평소 안 해본 일을 시작해보고자 독서 모임을 시작했습니다. 부끄럽지만 독서를 잘 하지 않는 사람인데, 요즘 갑자기 책이 자꾸 읽고 싶더군요. 마침 개발자 모임에도 참가해 보고 싶었던 차라 신청했고, 그렇게 읽게된 첫 책은 [게임: 행위성의 예술]이었습니다.

게임: 행위성의 예술

 

표지에 기타 히어로, GTA, 슈퍼 마리오 형제, 테트리스 그리고 무엇보다 QWOP이 그려져 있어 저자(또는 삽화가)가 게임에 진심인 사람임이 보여 신뢰가 갔습니다. 하지만 책이 작고 귀엽게 생긴 것에 반해 어려워서 조금 놀랐습니다. 막연하게 [피, 땀, 픽셀]과 비슷한 느낌의 게임 개발자 입장에서 게임에 대해 고찰한 내용일 줄 알았는데, 실제로는 암벽등반부터 핏비트까지 보다 폭 넓은 종류의 게임을 다루고, 게임의 고유한 특성에 대한 심도 깊은 내용이자 게임이라는 예술 장르에 관한 철학적 개념을 분석한 책이었습니다. 실제로 표지에 그려진 게임들은 책에서 전부 한 번씩 언급되면서 논지 전개의 적절한 예시로 사용되어 저자가 헤비 게이머일거라는 예상은 맞았습니다.

 


 

회화가 시각적인 예술, 음악이 소리의 예술이라면 게임은 행위성의 예술입니다. 행위성이란 무엇일까요?

저자는 (의도적으로) 행위성의 정의를 명확하게 설명해주지는 않지만, 게임이 행위성을 매체 삼아 작동하면서 행위성의 본성을 보여준다고 역설합니다. 이게 무슨 소린가 싶지만 책 전반에 걸쳐 게임의 행위적 특성을 분석하는 시선을 따라가다 보면 게임이 여타 예술과 어떻게 다른지 알 수 있습니다.

게임은 실천성, 즉 결정하고 행위하는 능력과 관계한다는 점에서 하나의 고유한 예술이다. (14쪽)

 

 

행위성은 실천성과 유사한 개념으로 보입니다. 게임은 플레이어의 행동과 결정으로 이루어져 있어 그 자체가 게임의 매체가 되고, 이를 실천성이라 부릅니다. 게임은 실천성의 예술이라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게임 디자이너는 플레이어를 위해 아주 특수한 고투 형식을 고안하며, 이를 위해서 플레이어가 취할 일시적인 실천적 행위성, 그리고 플레이어가 맞서 싸울 실천적 환경 등 두 가지를 모두 제작한다. (35쪽) 

 

 

게임 제작자는 플레이어가 게임 내에서 가질 실천적 행위성의 골격과 그것을 취할 수 있는 실천적 환경을 제공해 줍니다. 게임은 플레이어가 취할 신천적 행위성을 형식으로 삼아서 특정한 미적인 경험을 제공하는 예술이라 할 수 있습니다.

 

분투형 플레이어는 이기기 위해 게임하지 않는다.
승리를 향해 고투하는 활동 혹은 경험을 맛보기 위해 승리에의 일회적인 관심을 장착할 뿐이다. (56쪽)

 

게임은 이기려고 하는게 아닙니다

 

게임은 언뜻 이기기 위해 하는 것 같지만, 실은 승리를 위한 분투 그 자체를 하기 위해 하는 행위입니다. 이를 분투형 플레이라 부릅니다.

분투형 플레이는 행위적 중첩이라는 과정을 수반합니다. 행위적 중첩이란, 게임 속 목표에 일시적으로 몰입하면서도 게임이 끝나거나 중단되면 유동적으로 외적 층위로 벗어나는 과정을 말합니다.

모노폴리를 할 때 내가 차지한 칸과 다른 사람이 차지한 칸은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한 자산이 되지만, 게임이 끝나면 바로 유기됩니다. 이런 식으로 게임을 하는 그 순간만큼은 사소한 목표에 몰입하게 됩니다. 게임은 그 목표를 추구하는 고투 행위 자체를 즐기는 예술인겁니다.

게임은 고투 행위를 즐기기 위해 하는 것 (원작: 원사운드)

 


 

게임은 실천적 행위를 통해 목표를 달성하는 고투 활동으로 미적 경험을 자아내는 행위성의 예술이다.

저자가 제시한 이 정의가 모든 장르의 게임을 완벽하게 설명하진 못하지만, 덕분에 게이머들 사이에서 유행하는 많은 게임 문화를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분투형 플레이

 

적당히 긴장감 있게 주고받는 게임에서 내가 존재감 있게 싸워 이기는 판으로 게임을 마무리하기 위해 마지막 판을 영원히 반복하는 행동은 승리를 위해 최선을 다해 고투하는 활동 자체를 추구하는 것입니다.

 

다크소울을 통해 경험하는 성취형 플레이

 

어렵기로 정평이 나 있는 게임을 무수한 시도 끝에 클리어 하는 것은 일종의 성취형 플레이이자 과제와 자신의 역량 사이의 조화를 느끼는 미적 활동이라 볼 수 있습니다.

 

자기 자신의 플레이를 미적으로 경험하는 행위이자 미적 경험을 바탕으로 사회적 관계를 구축하는 행위 (원작: Julia Lepetit)

 

매드무비(자신의 게임 플레이 중 명장면이나 멋있는 장면을 편집해서 만든 하이라이트 영상)를 만들고 감상하는 행위는 곧 플레이어가 내적 층위에서 빠져나와 자기 자신의 플레이를 미적으로 경험하는 행위의 예시이죠.

게이머들 사이에서는 자신의 장례식에서 자기가 가장 멋있었던 게임 플레이 영상을 틀어달라는 농담이 있는데, 이 또한 결국 게임을 통한 미적 경험을 바탕으로 사회적 관계를 구축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게임이라는 예술 형식을 구체적으로 분석해서 저에게 새로운 관점을 제시해준 책이었지만, 한 편으로는 저자의 주장이 아쉬운 부분도 있었습니다.

게임은 우리에게 가치 명료성을 제공한다. 이는 어마어마한 미적 즐거움과 심리적 안정을 제공한다.
...
게임 속에서는 그러한 명료성이 커다란 치료 효과가 있고, 만족을 주며, 유용하고, 심지어 아름다울 수도 있으나, 우리는 가치 명료성의 환상을 게임 바깥으로 전파하려는 유혹에 저항해야만 한다. (329쪽)

 

 

아닌 게임도 분명히 존재하지만, 대부분의 게임, 특히 비디오 게임은 모든 것을 수치화해야 합니다. 플레이어 점수, 호감도, 진행도 등 게임 내 무수히 많은 것들이 수치화 되어 저장되고, 결과에 영향을 미칩니다. 수치화된 정보는 단순화될 수 밖에 없고, 그로 인해 게임은 가치 명료성을 띠게 됩니다.

 

게임 및 게임 같은 체계가 단순화·수량화된 목표의 무반성적인 추구의 확산을 부추긴다는 점을 훨씬 더 우려한다. (291쪽)

 

저자는 게임의 가치 명료성이 게임 외부로 확산되면 현실의 가치마저 단순화되어 그 맥락을 잃어버릴 것을 우려합니다.

'핏비트에 운동 기록하기'라는 게임의 내적 목표을 너무 중요시한 나머지 '건강하게 지내기'라는 외적 목표를 잃어버리는 것이 그 예시입니다. 가치 명료성에 매료되어 본래 목표로부터 멀어지고, 본인의 자율성을 해치면서 진짜 가치(건강하게 지내기) 대신 일상적 대용물(핏비트에 운동 기록하기)을 추구하게 된다는 것이 주된 주장입니다.

 

하지만 단순화된 가치들을 현실과 혼동하는 것은 다른 형태의 매체들도 마찬가지 아닌가? 라는 생각이 들었던 대목입니다.

예전에는 드라마 악역 배우가 현실에서도 비난받는 경우가 흔했지만, 사람들이 드라마라는 매체에 익숙해진 후 그러한 현상은 거의 사라졌습니다. 더 과거에는 사람들이 소설 등장인물에 지나치게 이입하여 자살하는 사건이 너무 많이 발생해서 베르테르 효과라고 부르기까지 했습니다.

매체를 막론하고 예술이 현실의 가치관을 변형시키는 것은 항상 일어나는 일입니다. 게임은 그 매체가 행위성이라는 점에서 특별하지만, 현실에 미치는 영향은 여타 예술과 유사합니다.

 

게임이 현실에 미치는 영향 (?)

 

재밌게도 이 문제의 해결책은 게임 더 많이 하기입니다. 게임 내에서의 태도와 게임 바깥에서의 태도를 달리하는 연습이 되어야 합니다. 앞서 언급한 행위적 중첩 상태를 유동적으로 오가는 훈련이 되어 있다면, 게임의 단순화된 가치와 현실의 복잡한 가치를 구분할 능력이 생깁니다.

 

다만 우리는 그러한 협소화된 상태를 관리하고 통제 아래 활용하며 그로부터 빠져나올 역량을 기를 필요가 있다. (333쪽)

 

게임 내에서는 가치 명료성에 기반하여 판단을 내리며 지정된 목표를 성취하려 노력하는 몰입된 상태를 받아들이고, 게임 바깥에서 게임 경험의 미적 특징을 판단할 때는 협소성에서 벗어나 보다 세밀한 현실의 가치에 입각해서 반성해야 합니다.

 

게임을 할 때는 우디르처럼 게임 내적 가치판단과 게임 외적 가치판단 사이에서 태세전환을 이루어야 합니다. 일러스트는 리워크 전 우디르.

 


 

'게임이 예술인가?' 하는 물음이 사실 게임이 보다 전통적인 다른 예술들과 충분히 많은 속성을 공유하는지를 묻는 것이 아니다. ... 게임이 풍요롭고 성취감을 주는 삶을 영위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인지, 아니면 게임은 그냥 시간을 허비할 길일 뿐인지를 묻는 질문이다. (192쪽)

 

어디선가 쓸모없는 경험은 없다고, 즐거웠으면 그 자체로 가치있는 것이라고 들은 적이 있습니다. 이는 모든 예술에 부합하는 말인 것 같지만, 슬프게도 게임은 유독 시간낭비라는 인상이 강합니다. 어떻게 하면 게임이 시간낭비가 아니게 될까요?

게임 내의 가치를 추구하는 행위는 현실의 시간을 희생한다. (원작: 모죠의 일지)

게임이 나와 다른 행위성에 대한 인공적이고 정확하며 압축적이고 결정화된 경험을 제공함으로써, 이와 유사하게 기능할 수 있다. (145쪽)

 

게임은 행위성의 예술입니다. 플레이어는 게임에서 정해주는 행위성을 장착하고, 목표를 향해 고투합니다. 게임을 하면 남는게 없다고들 이야기하지만, 게임을 하면 행위성을 수행해본 경험이 남습니다. 그 경험을 현실에 충분히 활용할 수 있다면, 게임을 한 시간은 그 행위성을 연습한 시간이 됩니다.

이는 멀티플레이어 게임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게임 디자이너는 독립적인 행위성들만 만든 것이 아니라, 행위성이라는 빌딩 블록을 이용하여 사회를 만들어 낸 것이다. (280쪽)



멀티플레이어 게임은 사회성을 만들어내는 예술입니다. 게임은 사회적 가치를 모델링하고, 플레이어로 하여금 사회적 가치를 추구하도록 합니다. 플레이어는 게임에서 경험한 사회를 바탕으로 현실 사회에서 기능할 수 있게 됩니다.

공대장 출신이 성공하는 이유: 수많은 플레이어들을 한 팀으로 통솔해야 하고 문제 해결 능력이 뛰어나야 해서 (출처: 승우아빠 일상채널)

 

다만 게임 개발자는 도움되는 행위성 유형을 제공해야만, 그리고 플레이어는 행위성을 학습해서 인생에 활용할 수 있어야만 게임은 시간낭비가 아니게 됩니다. 교훈을 찾아볼 수 없는 통속소설이 있는가 하면 사회를 날카롭게 비판하는 소설이 존재하는 것처럼, 이 역시 거의 모든 예술 형태에 해당하는 말입니다. 인간의 예술을 향유하는 행위가 쓸모없는 행위가 아니기 위해서는 창작자, 소비자 모두 고민해봐야할 지점인 것 같습니다.

 


 

그동안 막연하게 게임은 예술이라고 생각하고 있었지만, 게임이 어떤 점에서 예술인지는 정의내리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무의식 중에 작품과 플레이어의 경험은 별개의 무언가라고 생각하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이 책을 읽으면서 게임이란 무엇인지, 게임 개발자는 무엇을 만드는 사람인지 좀 더 명료해진 느낌입니다. 게임의 규칙과 실천적 환경으로 만들어지는 틀, 플레이어들 서로 간의 상호작용, 그리고 플레이어들과 함께 만들어가는 행위성 자체가 게임 개발자로서 궁극적으로 추구해야할 완성품인 것입니다. 내가 어떤 작품을 창조하고 있는지, 플레이어들에게 어떤 경험을 제공할지, 어떤 영향을 미칠지 돌아볼 수 있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게임이라는 예술 장르는 그 역사가 짧아 아직 설익었지만, 그만큼 가능성이 무궁무진한 것 같습니다. 아쉬운 부분도 있었지만 게임에 대해 깊게 탐구할 수 있어 유익했습니다. 어려운 책이지만, 게임이 관심있는 사람이라면 추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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